그는 부산여중과 부산여고를 다녔다.
전쟁 직후, 어렵고 폐허가 된 우리나라에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소녀가 얼마나 있었을까?
그나마 직접적인 전쟁터가 아니었던 부산이라는 곳에서 지냈다는 것도 축복이었지만, 깨어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혜택을 받은 게 분명하다. 거기에 어려서부터 보여 준 '총명함'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도 막내 여동생을 계속 교육시키며 뒷바라지 할 동기가 되었으리라.
그의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떠오르는 하나의 이미지가 있다.
검은 색에 하얀 카라가 달린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다. 크지 않은 체격에 하얗고 오목조목한 얼굴이 친구들과 다정하게 웃고 있다. 내가 직접 그런 그의 사진을 본 적이 있는 건지, 아니면 어디선가 본 사진에 그의 얼굴을 대입하여 기억하고 있는 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는 다른 또래의 친구들처럼 말똥만 굴러가도 까르르르 웃는 소녀였을 것이다. 시를 읽고 노래를 하고, 흥이 나면 춤도 추고.
가끔 그는 무용시간의 이야기를 했었다. 명문 여자중학교라서 그랬는지 체육시간으로 무용시간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 우리가 음악시간에 배웠던 각국의 전통음악이나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왈츠나 전통무용을 배웠다고 했다. 그가 춤추는 것을 본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용시간을 즐겁게 기억하는 것으로 봐서 그는 춤을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하다. 잘 추는 것과 상관없이 춤추는 것을 즐기는 나는 그를 닮았나?
시험기간에는 다른 친구의 집에 가서 밤샘 공부를 하기도 했다. 인천도 그렇지만 부산에도 일본인들이 지어서 살다가 나간 적산가옥이 많았다고 했는데, 그는 언젠가 밤샘 공부를 하러 갔던 친구집이 그런 적산가옥이라는 얘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2층에 있는 방에 모여 그에게 "너는 피부가 뽀얗고 이쁘니 목욕탕에서 선을 봐야겠다"는 이런 시덥잖은 농담을 하며 공부를 했고, 그집 가정부가 2층으로 맛있는 간식을 옮겨 주었었다는 그런 얘기들......
그가 친하게 지내던 고등학교 친구 중 하나는 아버지가 세무공무원인 부잣집 딸이었는데 작은 체구에 오목조목하게 생긴 그와 달리 키도 크고 시원시원한 스타일이었다. 둘이 어쩌다 친해졌는지, 어떤 부분이 서로 마음이 맞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서로 왕래하며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서울로 가고 싶어했는데, 그 부잣집은 여자를 대학까지 교육시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대학을 보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에 비하면 아버지가 없음에도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그는 정말 복받은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