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썰/소설쓰기

3.

슬픈온대 2018. 10. 18. 11:46

해방된 시골마을에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온다. 

가을걷이를 준비하는 논에는 참새를 쫓기 위한 허수아비가 늘어서있고 동네 아이들은 여름보다 시원해진 산과 들을 쏘다니며 부모님을 돕느라 허수아비를 흔들고 참새를 쫓아내다가 금세 고추잠자리며 메뚜기를 잡으면서 놀기 마련이다.

몸이 약하다고 주로 집에서 누워있던 그도 몸이 근질근질하여 밖에서 놀곤 했을터. 


일곱 살의 그는 어느 가을날, 자기랑 놀던 동무들이 책보를 메고 모자를 쓰고 나타난 것을 발견했다. 

훠어이훠어이 허수아비를 흔들면서도 "너는 학교도 안댕기지? 우리는 너랑 달라"하며 놀리는 것이다. 분명 며칠 전까지는 같이 놀던 애들인데..... 그가 보기에 학교란 곳은 신나보였고, 도전해야 할 새로운 곳이었다. 그리고 학생이 된다는 것은 모자를 흔들며 자랑할 수 있는 특권같았다. 


그는 집에 가서 아빠를 졸라대기 시작했다. 몸도 약하고 아직 일곱 살이라 학교에 나중에 보내려고 했던 그의 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알겠다고 허락하셨을 것이다. 어쩌면 귀여운 막내를 이뻐하는 큰아들이 이 아이는 잘해낼 거라고 옆에서 부추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큰오빠, 아니 하나뿐인 오빠이자 집안의 장남인 그의 오빠는 평생 그의 든든한 지원군이었으니까 그때도 그렇지 않았을까?


그는 아버지 손을 잡고 처음 학교에 가던 날의 설렘을 꿈꾸듯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장에서 하얀 블라우스와 검정 치마를 사오셨다고 했다. 그는 그옷을 입어보고 또 입어보고...... 다음 날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학교가는 길은 어땠을까? 그는 얌전한 어린이였으므로 길에서 풀을 구경하고열매를 따고 벌레를 잡으며 해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걸음이 빨랐을 아버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검정 치마 아래 두 작은 다리가 종종거리며 움직였을테지!


당시는 가을학기제였으니까 추수철에 학교에 간 그는 남들에 비해 학교 생활을 약간 늦게 시작했다고 했다. 남들은 이미 한글도 다 배우고 노래도 잘 부르고 덧셈도 하고 있었는데 그는 하나도 몰랐다고 했다. 그래도 아빠를 졸라서 간 학교니 그런 것을 투덜거릴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그는 총명한 학생이었고, 공부는 재미있었고 그는 곧 학급의 동무들을 다 따라잡아 우수한 성적을 받곤 했단다. 지금이야 인기가 좋은 아이들이 반장부반장을 했지만 예전에는 반 1등 2등을 하는 우등생이 아니면 반장이 되기 힘들었다. 그는 다음 학기인가에는 우등생이 되어 부반장이 되었다고 했다.  


그후의 학교생활이 어땠는지는 자세히 듣지 못했다. 

그는 우등생이었고, 학교 동무들과도 잘 지냈을터였다. 그러다가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인 큰오빠가 부산에 직장을 얻게 되면서 가족이 모두 부산으로 이사를 가게된다. 지금이야 남해대교가 연결되어 남해는 섬이지만 육지처럼 연결되고 있지만 그때 남해는 섬이었고 뭍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배를 탔어야 했다. 그때 배를 타러 가던 그의 몇몇 동무가 눈물을 뿌리며 슬퍼했다고 했다. 떠나는 배의 고동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뿌리는 소녀들. 그때 그의 나이는 열한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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