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1월.
그때는 이미 전쟁에 맛들인 일본이 중일전쟁을 시작하고 독일도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시기였다.
일본은 전쟁물자를 대기 위해 식민지 조선에서 엄청난 물자를 공출해갔고 그래서 일반 민중들은 먹고 살기가 더더욱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렇게 어려운 시절이어도 아이는 태어나는 법. 그는 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고 있는 겨울에 조선의 남쪽섬인 남해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때 1897년생인 그의 어머니는 이미 마흔이 넘었다. 노산인데다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기 어려웠을 시기니 그는 매우 작고 연약한 아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이름은 '봄잎'이었다. 그의 부모가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렇게 지었는지 아니면 봄잎처럼 작고 연약해보여서 그렇게 지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름이 당시 유행하던 일본식 '~자'가 아닌 독특한 '봄잎'이라는 것 때문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당시 시골사람치고는 매우 깨인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는 당시 사람치고는 드물게 양력생일을 기리는 사람이었다. 그의 오빠는 일본에서 운전을 배워왔다고 하니 시골에서 그럭저럭 살면서 소위 '깨인' 집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를 닮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작고, 피부가 하얗고, 머리카락은 노랗다고 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서양사람같다고 했다고도 했다. 그리고 몸이 약해서 엄마가 일하러 가면 하루종일 문간방에 누워 엄마를 기다렸다고 했다. 허약체질이었는지 아니면 한참 커야 할 어린 시절에 영양이 부족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노란 머리는 싹 밀면 검은 머리로 다시 난다던가? 어느 해인가 그의 어머니는 그의 머리를 밀어버렸고, 어린 마음에도 까까머리가 부끄러웠는지 한동안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여주는 것을 꺼렸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다시 나기 시작한 머리는 보통은 한국사람처럼 검은 머리였고, 숱이 많고 건강한 모발이었다.
워낙 어린 시절에 식민지 일본을 살았기 때문에 식민지 조선에 대한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나쁜 기억 하나를 말해준 적이 있다. 일본인들이 전쟁물자를 확충하기 위해 보통 가정의 온갖 쇠붙이를 다 수거해 갔는데, 그래서 밥먹다가 말고 수저를 숨기거나 놋그릇을 숨기던 기억이 난다고 했었다. 어린 마음에 매우 무섭고 나쁜 기억이었다고. 그의 어린 시절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