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썰/여행 이야기

의주길을 가다-의주길 5길 임진나루길

슬픈온대 2020. 12. 21. 17:19

의주길 5길 임진나루길은 선유삼거리부터 임진각까지 13.8킬로에 이르는 길이다. 화석정부터 장산전망대까지는 경기둘레길 및 평화누리길과 경로가 같지만 화석정이나 장산전망대 이후로는 길이 갈리기 때문에 길찾을 때 주의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임진각을 좋아하기도 하고(북한에 대한 그리움 때문은 아니다) 차로도 자전거로도 여러 번 방문했고 길도 괜찮아서 의주길 5길은 두번이나 방문했다. 한번은 임진각으로 먼저 가서 반대방향으로 돌았고 두번째에는 선유삼거리에서 시작했다. 이용가능한 화장실은 화석정과 임진각에 있으며 장산1리 마을회관 주변 화장실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장산전망대 근처 화장실도 코로나 때문인지 동파우려 때문인지 잠겨 있었다. 나는 내가 '벙커길'이라 불리는 길에서 급한 불을 끌 수 밖에 없었다. 

 

임진각에서 출발한 날도 있었지만 포스팅은 선유삼거리 출발을 중심으로 쓰겠다. 의주길 4길의 끝, 의주길 5길의 시작지점에는 이렇게 의주길 5길 지도가 나와 있다. 그리고 의주길 표지를 따라 길을 건너고 개천을 따라 걸으면 된다. 아쉽게도 개천길은 조금 걷다가 끝나고 역시 인도가 없는 차도를 따라 길을 걸어야 한다.

 

의주길 5길 지도

북쪽 화석정을 향해 걷다보면 중간에 '이세화 선생묘'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가는 길에서 900미터 정도 들어가는 것 같다. 나는 이세화 선생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도 없으면 별로 알고 싶은 생각도 없으므로 그냥 지나쳤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임진각에서 반대방향으로 왔을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이세화 선생묘를 지나고 나니 찻길이 갈라진다. 지도에서는 의주길의 원래 길이 거의 일직선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왼쪽의 길로 가야한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가던 큰길을 따라 갔다. 그랬더니 아무리 가도 전에 밥을 먹었던 임꺽정 한우마을도 안 보이고 벚꽃이 피면 예쁘겠다고 생각했던 정수장도 보이지 않았다. 찻길을 따라 이렇게 길게 가는 길이던가 하며 이상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참 걸었더니 공원과 화장실이 나왔다. 화장실? 지난 번에는 보지 못한 건데? 하며 둘러보니 거기는 율곡습지 공원. 잘못와도 한참 잘못 왔지만 그래도 당황하지 마시라... 거기서 평화누리길을 따라 그냥 화석정으로 가면 된다. 많이 멀지도 않다.

 

암튼 우리가 길을 잘못 들어간 문제의 지점은 아래 연두 동그라미 지점이다 ;;;;;;;

만약 우리처럼 길을 잘못 찾지 않았다면 곧 어린이집이 하나 보일 것이고 조금 더 가면 요양병원과 장례식장이 함께 있는 풍경을 볼 것이다. 거길 보면서 효율적인 시스템이긴 한데 좀 거시기하겠다는 얘길 했었다. 

조금 더 가면 왼쪽에(임진각에서 출발한다면 오른쪽에) 수자원공사 건물이 보이는데 진입로에 벚나무가 깔려 있다. 벚꽃이 필 때 오면 엄청 예쁘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의주길 5길이나 화석정을 방문할 것이 아니라면 굳이 여기까지 오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도 들어 피식 웃었다. 조금 더 가면 한쪽에는 임진강수라상, 반대쪽에는 임꺽정한우마을이 보인다.

 

우리가 거기 도착했을 때는 임진각에서 출발해서 임진강나루터마을 지나고 화석정 지나고 배는 고픈데 딱히 먹을만한 게 없다고 하는 중에 만나서 더 좋았을 수도 있지만 임꺽정한우마을 정말 좋았다. 남편은 설렁탕을, 나는 육회비빔밥을 시켰는데 고기를 구워먹지 않아도 간과 천엽을 그냥 주고(우리는 간은 먹지 않아 천엽만 받았다) 천엽도 리필을 해준다 ^0^ 설렁탕도 국물이 진하고 맛있고, 육회비빔밥도 맛있었고 반찬도 다 짜지 않고 맛있었다. 무엇보다도 육회비빔밥에 같이 나온 된장찌개가 너무너무 맛있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신없이 먹느라 사진은 안 찍었다 ㅎㅎ 우린 나온 음식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었고 후식으로 나온 귤과 호박식혜까지 먹어치웠다. 그 외에도 후식차로 커피 외에 유자차나 생강차도 먹을 수 있었지만 배가 불러서 그냥 나왔다. 친절하시기도 하고 아주 좋았다.

임꺽정 한우마을. 지나간다면 강추

한우마을을 지나서 좀 더 가면 이제 찻길에서 벗어나 마을을 향하는 길로 들어갈 수 있다. 들어가는 길에 있는 논에도 또 기러기들이 앉아 있어 기분이 좋다. 화석정에 가까이 가면 타운하우스같은 예쁜 집들도 몇 채 보인다. 그리고 이제 화석정. 스탬프도 찍고 사진도 찍고 간단한 간식도 먹고 좋다. 풍광도 좋다. 

화석정 가는 길에 만난 기러기들
화석정의 보호수. 560년 되었다고.
어설픈 인증샷 ㅋㅋ
두번째 간 화석정에서. 시누이
화석정에서 보이는 임진강과 도로

화석정에서 내려오면 이제 임진강가를 지나 임진강 나루터마을을 지나게 된다. 임진강나루터 마을 자체에서는 산에 막혀서 임진강은 안 보이고 임진강가를 걷는 그 짧은 구간에서 임진강이 보인다. 멋있다.

임진강 배경 셀카

 

임진강변을 걷는 남편

임진강나루터마을을 지나면 오른쪽에 산이 보이는데 그 산이 바로 장산전망대가 있는 산이다. 나루터마을은 꽤 높은 지대에 있고 장산전망대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갔다가 올라가야 한다. 장산전망대로 가는 길에 꿩이 꿩꾸엉하며 나는 걸 보았다. 그리고 말똥가리 두 마리가 나는 것도 봤다. 내가 의주길 5길을 좋아하는 이유다 ^^ 이 길은 의주길과 평화누리길, 경기둘레길이 함께 간다.

 

한지붕 세가족, 아니 한 길 세 리본 ^^
장산전망대를 가리키는 의주길 표지판

장산전망대는 엄청 높은 산의 전망대는 아니지만 그 아래 논이 펼쳐져 있고 민통선 안쪽의 섬인 초평도가 훤히 보인다. 장산전망대 아래 논이나 초평도에는 겨울에 재두루미나 독수리가 오기 때문에 장산전망대도 내가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다. 이번에 가니 전망대에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망대 아래에는 독수리들이 앉아 무언가를 먹고 하늘에도 독수리 몇 마리가 날고 참매 소리까지 들렸다. 참매를 관찰하지는 못했지만 정말 최고였다.

 

장산전망대에 새로 생긴 망원경. 시야는 좀 뿌옇지만 멀리 있는 것이 보이긴 한다. 망원경 바로 앞쪽 강 건너가 초평도다.

장산전망대에서 내려오면 의주길과 평화누리길이 갈라진다. 드디어! 의주길은 직진을 하고 평화누리길은 옆으로 이어진 데크를 따라 걷는다. 데크에 혹해서 따라가면 안되지만 뭐 굳이 안되겠나 싶은 생각도 드는 게 어차피 두 길 모두 임진각에서 만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ㅎㅎㅎ

의주길과 평화누리길이 갈라진다. 

평화누리길의 유혹을 이겨내고 의주길 표지판을 따라 가면 이렇게 버스정류장을 만난다. 버스정류장이라기에는 좀 초라하지만 그래도 누군가 의자를 가져다놓았다. 여기서부터 장산1리 마을이 나타날 때까지는 벙커길이다. 길 한켠으로 대포가 숨을 것 같이 생긴 벙커같은 게 수시로 나타난다. 내가 급한 자연의 부름을 해결한 곳도 그 벙커고 ^^ 벙커 만세!

장산1리 정류장

벙커길에서 빠져나와 마을에 들어서면 또 논에 기러기들이 보인다. 아주 부지런하고 시끄럽고 귀엽다. 내가 의주길 5길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 기러기들이 아주아주 많이 자주 보이기 때문이다. 의주길과 상관없이 기러기를 보러도 문산천 근처에 많이 왔었다.

기러기들 곁을 지나고 찻길을 따라 계속 걷는다. 의주길 4길도 의주길 3길도 의주길 5길도 인도가 없는 찻길을 따라 중간중간 걸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왜 의주길 5길에 대해서만 너그러운 평가를 줄까 생각해봤는데 차의 밀도와 종류인 것 같다. 의주길 3길과 4길에서 만난 차들은 아주 크고 위협적이었는데다 많이 다니기까지 했는데 의주길 5길에서는 큰 트럭같은 걸 거의 만나지 않았고 차들 자체가 아주 많지도 않았다. 물론 그건 다른 길은 평일에, 의주길 5길은 두번 다 일요일에 걸어서일 수도 있지만.... 암튼 한참 걷다보면 마정리로 들어가게 되는데 크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하고 예쁜 마을이다. 다음지도에서는 마정리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 논길로 걷는 것으로 나와 있지만 의주길 리본과 표지판은 마정초등학교 옆으로 지나가게 되어 있다. 마정초등학교를 지나 하늘사랑교회에서 꺾어서 걷게 되는데 교회가 까페처럼 예쁘게 생겼다. 그 옆 예쁜 건물은 뭔가 했더니 갤러리라고. 

마을에서 만난 커다란 밤나무
마정리에서 만난 예쁘고 작은 갤러리. 

예쁜 마을을 지나는 구간은 짧다. 마을의 끝에는 예쁜 까페가 하나 있지만 코로나 2.5단계에 까페는 갈 수가 없지..... 그 다음 길을 건넌다. 신호등이 있지만 차들이 '신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달리겠다'의 기세로 마구 달리니 신호등이 바뀌어도 차들이 섰는지 확인하며 건너는 것이 좋다. 아무리 차가 많지 않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어도 그렇지, 그래도 사거리인데 사고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빨간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리는 사람들 진짜 싫다!

 

길을 건넌 후 역시 인도없는 차도를 따라 걷는다. 양 옆의 논에는 역시나 기러기들이 깔려있다. 파주평야는 기러기들의 천국인 것! 나는 차도로 가지만 기러기들 덕에 입이 귀에 걸린채로 걸을 수 있다. 한참 걷다가 논 옆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아마도 자유로로 추정되는 길 아래로 지나간다. 기둥에는 경기둘레길, 평화누리길, 의주길 표지가 모두 있는데 의주길 표지판이 틀렸다. 노랑은 임진각 방향이고 보라는 서울방향인데 저 표지에서의 보라색쪽으로 가야 임진각이 나온다. 잘 가다가 헷갈리지 마시길!

 

의주길 표지판의 방향표시 색이 틀렸다

다리를 지나 조심하면서 길을 건넌다. 신호등은 없다. 길 건너에 임진강역이 있는데 아직 기차 막차시간이 남았을 때 갔는데도 셔터가 반쯤 내려져 있었다. 아무나 들어오지 말라는 것처럼. 임진강역을 지나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쪽으로 걷다보면 이런 기차도 나온다. 나는 임진각 공원 기차길 옆쪽 커피숍에서 커피를 한잔 사들었다. 스탬프는 임진각 전망대 건물 앞쪽 자유의 다리 가기 전에 있다. 시간이 난다면 자유의 다리를 건너보는 것도 좋겠다. 

 

임진각은 교통이 안 좋다. 문산역 방면으로 운행하는 버스가 드물게 있고 주말에는 편수가 좀 늘어난다.

임진강역도 문산역으로 가는 셔틀이 자주 없다. 평일에는 하루 2편, 주말에는 5편이다. 주말에는 합정역에서부터 오는 7300버스가 있는데 그 버스 시간표는 찍지 않았다. 임진각 교통편 때문에 두번 다 평일이 아닌 주말에 움직였다. 더 한산한 평일에 움직이고 싶다면 걸은 후 임진각에서 나오는 것보다는 임진각에 먼저 가서 걸어서 선유동으로 나오는 게 그나마 버스 이동이 나으므로 반대방향으로 걷는 것을 추천한다.

 

처음 의주길 5길 걸을 때는 임진각에서 출발해서 선유삼거리 방향으로 걸었고, 두번째는 임진각방향으로 걸었는데 임진각 도착 시간이 3시 20분이고 다음 출발버스는 4시, 그 다음 버스는 5시 40분인데 배도 고프고 힘들어서 4시차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남편을 불러서 갔다.

 

임진각 버스시간표

의주길 5길이 나에게 좋은 이유는 겨울철새, 특히 기러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차도를 걸어도 차들의 밀도가 낮기 때문이기도 하고 쉬는 날 걸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무튼, 의주길 5길은 다시 걷자고 해도 걸을 수 있다. 늦가을부터 초봄까지는 ^^ 기러기가 있으니까